[박시형 변호사] 법률신문 기고 - 등기법상 집행정지제도 도입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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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1-11-2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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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법상 집행정지제도 도입의 필요성
A법무사는 한신은행 대교역지점 전속법무사이다. 그는 지점장 의뢰에 따라 채권최고액 50억 원짜리 공장근저당권설정등기를 등기국에 접수했다. 그런데 등기국에서는 설정계약서에 채무자 간인이 흐리다며 보정을 냈다. A법무사는 여직원과 20쪽짜리 공장저당계약서를 아무리 살펴봐도 어느 간인이 흐리다는 건지 몰랐지만 개중 흐릿한 간인 4군데를 추렸다. 채무자 황 사장이 연락을 받지 않아 애가 탄 A법무사는 황 사장의 집을 찾아갔다. 자정 무렵 술에 취해 귀가하던 황 사장은 A법무사가 계약서를 꺼내자 험한 말을 하며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편 50억 원짜리 설정등기가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니 대교역지점은 발칵 뒤집혔다.
B변호사는 흙수저 출신 상속전문변호사이다. 그는 선배에게서 상속등기의뢰를 받고 공시지가 15억 원인 토지의 상속등기를 등기소에 접수했다. 그런데 등기소에서는 피상속인의 인적 동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보정을 냈다. B변호사는 등기관이 요청하는 서류를 선배에게 말했다가 잔소리를 들었고, 등기관과는 보정내용을 가지고 통화를 하다가 약간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 B변호사는 이래저래 골치 아프게 되었다는 생각에 등기신청을 취하한 다음 증빙자료를 준비하고 이를 설명하는 의견서까지 써서 다시 등기를 신청했다. 그런데 하필 새로 한 등기사건도 같은 등기관에 배당이 되었다. 등기관은 사무실로 전화해 "안녕하십니까 변호사님, 의견서 이해가 잘 안 되니 등기소에 와서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A와 B의 운명은?
1. 현행 등기법의 문제점
현행법상 등기관의 처분에 대한 불복으로는 이의신청만 가능하다. 그런데 부동산등기법(제104조)과 상업등기법(제86조)은 공히 이의신청에 집행정지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일률적인 집행부정지원칙으로 인해, 등기신청인이 등기관의 부당한 각하처분에 불복하더라도 각하처분의 효력을 막을 방법이 없다. '처분 전의 가등기 및 부기등기 제도'로는 기존 등기신청의 순위가 보전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의신청이 인용되더라도 해당 등기는 법원의 취소결정 후 등기가 될 때나 효력이 생긴다. 등기, 특히 부동산등기는 신청인이 접수한 날짜에 부여된 순위로 기입되어야 의미가 있다. 때문에 등기실무에서는 등기관의 보정명령이나 각하처분이 부당해 보여도 이의신청을 하지 못하고, 등기관에 읍소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등기관에 이익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한다.
2. 집행정지제도의 당위
재판에 있어서는 1심의 판결이 있어도 집행정지신청을 통해 집행을 막을 수 있고, 경매절차에서 사법보좌관이 하는 배당에 대하여도 배당이의 소로써 배당을 정지시킬 수 있다. 법관의 판단도 집행정지의 대상임을 생각하면 등기관의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제도를 두지 않음은 많이 어색하다. 등기관의 처분이 행정처분의 일종인 점도 집행정지제도의 당위를 보강한다. 등기관이 부당한 처분을 해도 이의신청을 쉽사리 택할 수 없으니 신청(대리)인은 무리한 보정도 다 해내야 한다. 아니면 등기관에게 읍소를 하거나, 심지어 부적절한 이익을 건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의신청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판례의 집적이 없고, 등기법리의 발전도 난망하다(2016~2019년 기준 전체 등기사건 건수 대비 이의사건 비율은 0.0035%, 등기관의 각하처분 대비 이의신청 비율은 1.43%, 이의신청사건의 평균 처리기간 3.97개월이며 이의신청 사건에서의 인용률은 약 30%로 파악되고 있음). 집행정지제도가 도입되면 이의신청을 해도 순위를 보전받으니 이의신청이 활성화될 수 있다. 사례가 쌓이면 법원, 등기소, 신청대리인, 국민의 등기사무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지며, 등기관 입장에서도 결정에 참고할 자료가 생성되므로 등기소 업무의 통일, 편리가 도모될 수 있다. 등기법학도 발전할 것이고, 이로 인해 법학계 및 법률서비스 분야에 새로운 영역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행정지제도는 이익형량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집행정지 원칙을 택할 때 발생할 부작용은 '심리기간 동안 신청등기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발생할 이해관계인 및 제3자의 불편'일 것인데, 이는 집행부정지를 택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인 '부당한 각하처분 후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기 전에 다른 등기가 기입됨으로써 선행 등기권리자가 잃게 되는 권리'보다 열위에 있다.
3. 사례의 해결
A는 무조건 등기관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억울해도 다른 수가 없다. 등기가 각하되면 은행은 담보 없이 대출해준 사고에 직면한다. 은행이 A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B는 이의신청을 선택할 수 있다. 상속등기는 일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의뢰인만 기다릴 수 있다면, 이의신청을 통해 각하처분을 취소하고 등기를 완료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런 성격의 등기가 많지 않고, 의뢰인 설득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집행정지제도가 있으면 A는 밤 늦게 황 사장을 기다리는 대신, 등기관의 각하결정에 대한 집행정지를 받고서 법원의 취소결정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박시형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이사)